역사학

한국사의 개념 및 정의

토리여사 일상 2025. 2. 12. 10:29

한국사의 개념 및 정의 

한국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의 역사이다. 흔히 한국사를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군신화 나온 대로 고조선의 건국연대인 기원전 2333년을 한국사의 시작으로 삼은 데서 기인한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0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였다. 청동기시대에는 권력자가 발생하였고, 철기시대가 되면서 고조선이 가장 먼저 초기국가로서 건국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가 형성되었고, 불교를 수용하여 왕권 강화 및 귀족들의 특권 강화를 정당화했다. 삼국시대(三國時代)는 기원전 1세기부터 7세기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한 시기를 일컫는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멸망하면서 한반도 중남부에는 통일신라, 북부에는 발해가 들어서 남북국 시대로 넘어간다. 

삼국시대 말기에 동양의 국제정세는 남북 세력과 신라와 수(隋)·당(唐)으로 연결되는 동서 세력의 대립 양상을 보였다. 남북국시대의 특징은 왕권이 강화되어 전제주의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는 말갈의 원주민을 피지배적으로 하는 국가로 거란에 멸망한 후 유민들은 고려에 합류했다. 발해는 대조영이 건국한 동아시아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 위치했던 고대 다민족 국가이다. 국호는 일반적으로 발해로만 알려져 있으나 대(對)일본 외교 문서에서는 고려(高麗)를 자칭하기도 했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왕위 쟁탈이 치열해졌고, 견훤(甄萱)이 세운 후백제와 궁예(弓裔)가 세운 후고구려(태봉)가 건국되어 신라와 더불어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다.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는 7세기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힘이 시간이 흘러 약해지면서 9세기 말~10세기 초에 다시 삼국시대 때와 같이 세 나라가 대치한 시대를 말한다. 크게는 태봉 → 고려, 후백제 그리고 신라가 서로 맞서고 그 이외 각지에서 지방 호족들이 난립했던 군웅할거의 전국(戰國)이 펼쳐졌던 시대이다. 통일신라(統一新羅)는 676년부터 935년까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하고,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를 통합한 이후의 신라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남북국 시대의 신라를 말한다. 

후고구려는 송악 지방의 호족인 왕건에 의해서 고려로 교체되었고, 결국 고려에 의한 후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변동은 새로이 성장한 호족 세력에 의해서 진골 귀족 중심의 고대적 체제가 극복되는 과정이었다.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여년간 한반도에 위치했던 한국의 불교를 국교로 삼은 전제군주정 국가이다.

918년 왕건이 자신의 주군이었던 태봉의 국왕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면서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했다.

후백제, 신라로 나뉘어 대치하던 후삼국시대는 936년에 끝나고, 이후 약 456년 동안 총 34명의 군주가 고려를 통치했다. 고려는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의해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 함경북도의 상당수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왕조는 불교를 장려하고, 건국된 지 약 50년이 지난 성종 때에 이르러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마련되었고 국가 기반이 확립되었다. 문벌 귀족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막대한 토지를 점유해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는 등 고려사회 지배 세력이 되었다. 문인 중심의 귀족사회였던 고려는 후기에 이르러 무인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무신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이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 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 주체 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운 정책으로 이어졌다. 무신정권 시대에 고려는 몽골의 침입으로 시련을 겪었다.

조선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이다. 1392년부터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 519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다스렸다. 조선은 성리학을 근본 사상으로 삼아 유교 문화를 꽃피웠으며,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성계(李成桂)를 국왕으로 추대해 조선 건국의 주체가 되었던 고려 말의 신흥사대부들은 양반 관료가 되어 유교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진력하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우호 정책을 폈다. 정치적 주장을 달리하는 붕당이 형성되어 ‘붕당정치’의 성리학적인 정치 운영의 형태가 전개될 무렵 일본군이 침입한 임진왜란과 여진족이 세운 후금(청)에 의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동요하던 조선 후기 사회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집권하여 세도정치를 종식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개혁 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강경한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고수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었다.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동시에 통상개화론 이 채택되어 개국 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나 일본과 서양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어 자주권을 유지하면서 근대사회로 발전해야 하는 이중(二重)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